본격적으로 사진이라는 취미를 시작한 지도 1개월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동안 보지 못하고 있었던 정말 많은 사물들, 사람들, 풍경들에 눈과 마음을 뺏겼다.
그리고 어제는... 2011 서울세계불꽃축제.
2003년 10월의 불꽃축제에 가서는 똑딱이 카메라로 불꽃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었던 기억이 있다. 마침 사진이라는 취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김에 그 때의 설욕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는...
불꽃놀이 사진이 왜 최고난이도의 촬영술이 필요한지 깨닫고는, 울며 돌아왔다.
1. 불꽃축제 촬영 준비를 하다.
1차로 동호회 분들과 가기로 계획을 잡았지만, 청주에서 올라가기에는 조금 무리였던 것 같다. 출사 계획이 무산됐다. 많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혼자서라도 가기로 마음먹고 금요일 밤 10시 막차로 상경했다. 일산 본가에 들어가니 새벽 1시가 넘었다.
토요일 오전 캐논 A/S센터에 들를 일이 있는지라, 자기 전에 출사정보를 챙기기 시작했다. 촬영 포인트부터 준비물까지.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두터운 옷, 돗자리, 바닥깔개, 가림막 역할을 할 검은색 빵모자, 간식거리들... 늦어도 오후 1~2시 까지는 가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고는 최대한 빨리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잠든 시간은 새벽 4시.
2. 결전의 장소로 출발하다.
오전 9시에 눈을 뜨고는 일산 캐논 A/S센터에 들렀다. 훤칠하니 잘생긴 청년이 친절하기까지 하다. 굳이 AF교정으로 이름높은 양재에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 5D 미러보강하는 김에, 가지고 있는 24-105와 50.8까지 보강후 AF교정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바디 AF교정까지 무료로 해주겠다고 하니 금상첨화. 원래 미러가 떨어진 경우가 아니라면 AF교정시 교정비를 받는다고 한다.
다시 집에 들어오면서 김밥 두 줄 사고, 간식거리를 좀 챙겼다. 아침 먹고 출발한 시간은 11시 반. 이촌동 원효대교와 한강철교 사이의 공원에 자리잡기로 결심했다.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처음 찍는 진사에겐 무난하다는 추천이 가슴에 남았기에...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용산역에 도착하니 훌쩍 한 시가 다 되어간다.
3. 좋은 인연과 만나다.
용산역에서 광장 쪽으로 내려왔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하고 이정표를 살피다가, 우연히 옆에 앉아서 통화하던 사람이 눈에 띄었다. 삼각대와 카메라용 백팩을 지니고 있었다. 괜한 친근감에 옆 2M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봤다. 길을 묻기 위해 통화를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물었다. 아니 요청했다. "저 혹시... 불꽃축제 촬영이 초행인데 같이 가도 될까요?"
상당히 뜬금없었을 질문에 친절히 답해준다. 구수한 부산 사투리. 그렇게 새로운 좋은 인연과 만났다. 일행들이 올 때까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같이 기다리다, 출발했다. 목적지는 애초에 염두에 뒀던 그 장소. 혼자 기다려야한다는 시간에 대한 압박감에 지하철 문고에서 산 '1Q84' 3권이 필요없게 됐다.
4. 늘어선 삼각대에 놀라다.
놀랐다. 예전에는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삼각대. 한강철교를 지나자마자 강변에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삼각대만 수거해 팔아도 집 몇 채는 나오지 싶을 정도였다. 그 얘기를 하자 같이 가던 친구가 얘기한다. "작년에 누가 그라대요. 여 있는 카메라 싹 거둬서 팔믄, 나라 빚도 다 갚겠다고요."
대한민국에 이리도 많은 사진동호인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카메라와 삼각대를 만났다. 그리고 삼각대 두어개에 노끈 묶고 삼각대 10 자리 정도 점유하는 사람들이나, 텐트 두 개와 삼각대 두 개에 노끈을 이어놓고 20여 평을 점유하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눈알을 부라리는 희한한 사람들도 있었다. 연세 드신 분들이라 별 말은 안하고 지나갔지만, 그렇게 하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기다림 시작.
2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했더니, 강변에는 자리가 많지 않았다. 한참을 올라가 원효대교 가까운 곳에 빈 곳을 발견하고는 자리를 폈다. 혼자가 아니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들과 수다를 떨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자리가 있다는 편안함에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겨서 억새사진을 한 컷 찍어봤다. 5D를 입고시키고, 청소하러 가지고 온 막쓰리로 오늘은 찍기로 했는데... 역시 센터에서 청소하니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해 기분이 상큼했다.
6. 기다림 중에...
석양 사진도 한 컷 찍어보고... 야경도 한 컷 찍어보고... 사실 원효대교 가까운 이 곳에 자리가 비어 있던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강 아래에 보이는 미나리 식재장. 강물을 화각 안에 다 넣기에 부담되는 장애물이다. 그리고 바지선 위치가 거의 63빌딩 바로 아래가 되어버려 구도가 시원찮았다.
그래도 좋은 사람과 좋은 인연을 나누며 보낸 시간들이 있었기에 아쉬움은 많지 않았다.
7. 혼자 오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바로 화장실 때문이다. 화장실은 우리가 자리한 곳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혼자 출발할 때 했던 생각은 '자리잡기 전에 화장실 가서는 마지막까지 버틴다'였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혼자가 아니라서. 어지간해서는 8~9시간을 화장실 가지 않고 버티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게다가 장비를 두고 움직이기도 불안했을테고.
8. 예광탄이 오르다.
한참을 하하호호 하고 있던 중. 갑자기 발사음이 들렸다. 손에 들고 있던 릴리즈를 급히 눌렀지만... 황망중에 셔터를 빨리 닫아버렸다. 1초 노출. 당연히 언더다. 하지만 화각은 괜찮게 잡혔기에 안심했다. 미리 찾아봤던 정보에는 예광탄에 화각을 맞추면 안심해도 된다고 했기에...
9. 예광탄에 속다.
예광탄에 속아도 제대로 속았다. 특히 이건 끝나고 사진 확인 후에 땅을 치고 후회를 한 부분이다. 예광탄보다 많이 높이, 많이 넓게 터졌다 불꽃들이. 그리고 불꽃은... 특히 초반이 중요하다. 연기가 많지 않기 때문에. 두번째 올라왔던 불꽃을 담은 사진이 너무 아쉬웠다. 깨끗한 밤하늘이지만 소중한 불꽃이 댕겅~ 잘려버렸다.
10. 무아의 셔터질. 불꽃에 반하다.
이 다음부터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계속해서 릴리즈를 누르고, 노출해둔 상태에서 모자로 렌즈를 가렸다 뗐다 반복하고, 셔터를 닫고. 하지만 결과물은 무수한 망사의 향연. 특히 연기가 많이 아쉬웠다. 불꽃이 괜찮게 피어 올랐다 하더라도, 참 흉한 얼룩처럼 연기들이 남아있다. 바로 위 사진의 화각이 너무 아쉬웠던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11. 그리고 피날레.
피날레 불꽃 사진은 특히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불꽃의 규모, 갯수, 밝기와 연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즉... 노출오버가 되기 쉽기 때문에, 짧게 짧게 셔터를 끊어줘야 한다. 하지만... 초보가 그걸 알았겠는가. 그냥 다 망쳤다. 피날레 불꽃은 어지간한 고수도 쉽게 담아내지는 못했으리라 자위하며... 망사를 올려본다.
12. 마무리가 좋아야 진짜 진사지~
피날레까지 마치고, 일행들은 천천히 나가자고 입을 모았다. 누가 봐도 그렇겠지만, 30여 분은 흘러야 좀 움직일만 할 듯 싶었다. 약간은 상기된, 그리고 웃음 띈 얼굴로 서로의 사진들을 살펴 본다. 남은 맥주와 안주들. 그리고 옆 자리 어르신들이 건네주고 가신 김밥과 약과. 작은 것들에 행복해하며 뒷 정리를 시작한다.
뒤늦게 뉴스를 통해 보았지만, 뒷마무리 안좋으신 진사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일행들은 깨끗했다. 정말 사진을 즐기고, 사람을 즐길 줄 아는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상 피우지 않는 진사. 마무리 좋은 진사가 진짜 진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13. 불꽃놀이 사진은 참 어렵다.
생각했던 것보다 불꽃놀이 사진은 많이 어려웠다. 빛의 강도가 수시로 달라져서 적정 노출시키기가 어려웠고, 야경과 조화롭게 불꽃을 살리기도 어려웠다.
검은 모자를 이용해서 다중노출을 시도해 본 건, 그래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불꽃 올라오는 걸 머릿 속에서 그림 그리듯이 맞춰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작이라고 부를만한 사진들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2003년 찍어뒀던 똑딱이 사진보단 많이 좋아진 듯 하여 살짝 기쁘다.
먼 훗날. 2011 서울세계불꽃축제의 사진을 놓고, 발전한 내 모습에 다시 기뻐하게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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